시청각 랩 (AVP lab)
AVP 2013~2019
avpavilion@gmail.com
시청각 랩(AVP lab)은 연구 공간이자 작품, 작가와 대화하는 창구로, 계간 시청각을 만드는 오피스 개념의 전시 공간이다.
AVP lab, where the exhibition is hosted, is an office-styled exhibition space that publishes AVP Monthly, in addition to serving as a research space and avenue to connect with artwork and artists.
서울 용산구 용문동 38-118 1층
(도로명) 효창원로 25길 9
1F, 38-118 Yongmun dong,
Yongsan-gu, Seoul
KAKAO MAP / NAVER MAP
시청각 랩 AVP LAB
전시 문서 Exhibition Document
계간 시청각 AVP Quarter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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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으로 물러서기: 재설정을 위한 시공적 그리기 — 박미나 «왜 빗방울은 푸른 얼굴의 황금 곰과 서커스에서 겹쳤을까?»

콘노 유키
 


 
어릴 때 많은 사람들이 해본 그림의 경험 중에 하나가 색칠 놀이이다. 이면지나 벽지에 낙서하고 테이블 밑에 들어가서 그림을 막 그리는 것과 달리, 색칠 놀이는 이미 그릴―이 표현에 대해서 곧 고민을 해보겠지만―대상이 주어져 있다. 꽃, 토끼, 기차 등등 어린이가 좋아할 만한 소재들이 이미 종이에 인쇄되어 있다. 색연필이나 파스텔을 손에 들고 윤곽이 잡힌 영역마다 색을 칠하는데, 이때 우리가 하는 경험은 정확히 말해 ‘그리기’가 아니다. 색칠 놀이에 암묵적으로 강요된 규칙은 그림을 아예 처음부터 ‘그리는’ 것과 다르다. 선을 벗어나지 않게, 원래 색깔에 맞게 색깔을 칠하는 경험은 그리기를 시공(施工)처럼 받아들인 결과이다. 이때 그림을 제대로 완성하려면 우리는 사실 그리기의 기능을 모사/재현이나, 꾸미기, 나아가 표현으로 해결하지 않아야 한다. 이미 주어진 영역에 맞게 색칠해야 할 때, 그리기의 기능은 사실상 재현과 표현도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특정 범위에 맞게, 마치 가벽을 빠데질하는 노동과 같은 기능으로 그리기를 받아들인다.
 
색칠 놀이에 요구되는 이런 자세는 교육적인 태도를 기른다. 그릴 때 윤곽선을 벗어나지 말아야 하고, 색깔을 잘 골라야 하는 색칠 놀이는 창의성보다 교육적인 측면을 더 많이 차지한다. 실제로―작가 박미나도 인지하듯이―색칠 놀이는 어린이 교육에 사용되는데, 이 특징은 일본에서 배우는 국어와 산수 공부를 비롯한 초등교육과 맞물리는 지점이 있다. 네모 안에 한 글자씩 들어갈 수 있게, 선을 벗어나지 않도록 풀이를 하는 경험은 색칠 놀이와 꽤나 흡사하다. 미술비평가 사와라기 노이(椹木野衣)는 그리기와 초등교육의 관계에 접목하면서 후자에서 네모와 틀 안에 맞게 쓰도록 배우는 과정이 ‘그리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한다.[1] 그는 색칠 놀이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초등교육을 받는 방식은 색칠 놀이와 동일한 교육적 태도가 필요하다. 수업에서 배우는 방식뿐만 아니라 초등교육의 ‘시간 잘 지키기’나 ‘내 자리에서 가만히 있기’처럼 색칠 놀이 또한 어떤 틀에 맞게 순응하는 태도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어릴 때 추억뿐만 아니라 현시점 우리가 겪는 상황과도 일치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을 직면하여 뮤지엄(박물관과 미술관)을 중심으로 웹페이지에 색칠 놀이가 공개되었고[2] 이때 색칠 놀이는 격리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요구되는 생활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심심풀이가 되었다. 그림을 완성할 때의 작지만 않은 달성감은 앞서 말한 시공적 경험과 순응적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정해진 영역에 맞게, 잘 맞는 색깔로 그림을 완성하는 일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작은 화면에 함축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이야기를 다시 돌리자. 그렇다면 작가 박미나의 그림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현시점에서 우리가 겪는 상황이나 교육 현장을 대변한다고만 볼 수 없다. 심지어 그의 작업을 일반적인 색칠 놀이 그 자체로 보기도 힘들다. 만약에 작품이 일반적인 색칠 놀이 또는 색칠 ‘공부’와 다름없다면 그의 작품은 노동과 수행의 결과물로, 시공이나 빠데질과 다름없다는 결론이 쉽게 난다. 그런데 모든 작품이 노동과 수행의 결과로 ‘막론’―‘막’ ‘논’하지 않고 색칠 놀이 그 자체가 아닌 측면에서 그의 작품을 분석할 수 있다. 시청각 랩에서 열린 이번 개인전 «왜 빗방울은 푸른 얼굴의 황금 곰과 서커스에서 겹쳤을까?»에 포함된 작품은 색칠 놀이 종이를 소재로 전개된 평면 작업이다. 전시에서 소개된 작업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자면 하나는 여러 형상이 중복된 위에 칠해진 <색칠 공부 드로잉 시리즈>, 다른 하나는 기존 색칠 놀이 그림에서 별만 남겨 칠한 <12 Colors>이다.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그의 작품은 일반적인 색칠 놀이와 동일하지 않다. 색칠이 윤곽을 벗어나고 심지어 색칠할 대상이 여러 개 중복되는 그의 작품은 ‘제대로 그린’ 결과로 보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그림에 어떤 의미를 직접적으로 부여하거나, (반대로) 채프먼 형제의 작품 (2004)[3]처럼 의미를 암시하지도 않는데, 그렇다고 우리는 그의 작품이 색칠 놀이의 시공적 특징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작가는 윤곽과 색칠할 대상에 ‘맞춰 그리는’ 시공적 역할을 거부하기는커녕, 오히려 받아들이면서 한 평면의 배경을 증폭시킨다.
 

 
두 작업에서 모두 그리기의 역할은 시공의 역할을 과장하여 보여준다. 예를 들어 <색칠 공부 드로잉 시리즈> 중 하나의 화면 안에 등장하는 짧은 문장―”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아요~”나 ”I LOVE YOU”―에 맞게 꽃이나 하트 스티커를 여러 개 많이 붙인 작품을 보면 문장에 ‘맞게’ 반응하는 작가의 태도를 읽어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스티커 붙이기가 색칠할 영역까지 다 차지하는 한편, 도형과 캐릭터는 증식하고 겹치면서 색칠할 대상뿐만 아니라 색칠할 영역 또한 증폭시킨다. 이처럼 장식과 모티프가 초과한 평면은 시공적인 태도를 색칠할 행위에만 부여하지 않는다. 재현적 그리기는 물론 대상에 맞게만 색칠하는 순응적인 행위와 달리, 작가는 그림의 밑바탕을 구성하는 데 주목하여 색칠할 영역을 재설정한다. 그것이 <색칠 공부 드로잉 시리즈>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시공적 태도이다. 마찬가지로 <12 Colors>에서 별―혹은 반짝이는 시각 효과―만 남긴 그림[4]에도 이런 특징은 나타난다. 작가는 여기서 별을 제외하고 화면의 나머지 영역을 같은 색으로 칠해버린다. 색깔에 따라 다르지만 어둡고 짙은 색상은 기존의 그림이 잡아주는 윤곽까지 거의 안 보일 정도인데, 이 별만 남은 평면에서 부각되는 그리기는 배경화의 기능으로 물러선다. 이때 ‘물러선다’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말하자면 그리기 이전의 단계로 옮겨지고, 평면 공간에서 특정 대상인 별을 양각처리하듯 주변에서 ‘부각’시키는 의미에서 그리기는 물러선다. 도장 기법인 양각이 주변을 잘 파서 글자를 남기는 것처럼, 작품에서 색칠하기는 그리는 단계보다 원초적인 차원에 놓이게 된다.
 
작품은 어떻게 평면을 재설정-시공하는지를 포착하여 보여준다. 평면 바탕의 차원에서 작가는 그리기의 역할을 재현으로 ‘밀고 나가지도’, 주어지고 정해진 영역에 맞게 그리는 시공적 태도에만 ‘머물지도’ 않는다. 그의 작품에서 그리기는 ‘나아가지도’ ‘머물지도’ 않고 오히려 배경으로 ‘후퇴한다’. 제목에 들어가는 ‘드로잉’이라는 말이 그렇듯이, 그의 작품은 그리기를 교육적 기초―재현의 기본이나 정해진 위치를 잘 칠하는―뿐만 아니라 시공적인 측면에서 검토한다. 작품은 한 화면에 그림―색칠할 대상이자 동시에 ‘페인팅이라는 것’―이 들어설 조건을 ‘다져’ 보여주는데 여기서 ‘다지다’라는 표현은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두 시리즈의 특징을 각각 포착할 뿐만 아니라 공통점 또한 포착한다. <색칠 공부 드로잉 시리즈>에서 증폭된 스티커와 도형이 단일한 모티프, 즉 색칠할 대상을 마치 여러 야채를 ‘다진 듯’ 보여준다면, <12 Colors>는 양각처리되어 물러선 단색 배경을 ‘잘 다져’ 보여준다. 그리고 두 시리즈에서 다지는 기술은 공통적으로 드로잉의 역할을 시공적인 의미로 포착한다. 실제로 색칠한 작업이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보는 것은 작가가 어떤 대상을 색칠하고 보여주거나 어느 부분을 칠했는지가 아니라 그 배후에 위치하는 것, 바로 배경이다. 이 재설정된 평면에서 색칠할 대상은 스티커로 침범받고 얽히거나 하나의 대상(별)만 드러낸다. 이런 과정에서 시공적 태도는 재현은 물론 색칠할 대상인 형상으로도 나아가지 않고 ‘페인팅이라는 것’을 재설정한다. 그의 작품에서 그리기는―두 가지의, 그리고 공통의 결과로―배경으로 물러서는 다지기의 기술로 받아들여진다.
 

 
 
[1]
(, 2018), p.26.
 
[2]
Boston Public Library, Harvard Art Museums, The New York Academy of Medicine, New York Botanical Garden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도 #ColorOurCollections의 해쉬태그(#)로 검색하면 많은 샘플을 찾을 수 있다.
 
[3]
참고로 이 작품은 색칠 놀이가 아니라 선 잇기 그림을 바탕으로 작가가 만든 작품이다. 비록 매체가 다르더라도 맞게 그리는 측면에서 비교할 만하다.
 
[4]
이 작품은 해, 달과 별만 남긴 시리즈이지만, 이번 개인전에서 별을 남긴 작품만 소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