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 랩 (AVP lab)
AVP 2013~2019
avpavilion@gmail.com
시청각 랩(AVP lab)은 연구 공간이자 작품, 작가와 대화하는 창구로, 계간 시청각을 만드는 오피스 개념의 전시 공간이다.
AVP lab, where the exhibition is hosted, is an office-styled exhibition space that publishes AVP Monthly, in addition to serving as a research space and avenue to connect with artwork and artists.
서울 용산구 용문동 38-118 1층
(도로명) 효창원로 25길 9
1F, 38-118 Yongmun dong,
Yongsan-gu, Seoul
KAKAO MAP / NAVER MAP
시청각 랩 AVP LAB
전시 문서 Exhibition Document
계간 시청각 AVP Quarter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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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 면이 짓는 칸과 틀의 전경
— 김동희 작가 인터뷰

인터뷰/정리: 김예지
 


[a]
 
비바람이 거센 2020년 7월 13일의 날씨는 혼란하고 복잡한 올여름의 상태를 대변하는 듯했다. 음악 대신 공간을 메웠던 빗소리와 함께 «홀(HALL)»을 준비하는 구조물들이 먼저 자리를 잡은 시청각 랩에서 김동희 작가를 만났다. 중첩되면서도 어긋나 있는 창밖 풍경과 격자형 기틀, 벽에 솟은 좌대들은 시선의 흐름을 타는 모양 맞추기 놀이를 유도하고 있었다. 주로 백색의 면과 홀수의 도해를 활용하는 작가는 단선적인 도형을 얽고 덧입혀 다층적인 시공을 형성한다. 얼핏얼핏 스치는 도형의 단층들은 서로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대상과 배경에 대한 시지각적 얼개를 짜 맞춘다. 그렇게 반쯤 닫힌 듯 열리게 된 시청각의 연구 공간은 서로 다른 층위를 가진 작가의 작업이 맞이하는 현관이다. 또 기술적으로 설정된 레이어를 거치며 계층 간 관계를 살피도록 하는 복도이게도 된다. 공간에 내포된 상황을 구조화하고, 기능적인 데이터에 규격을 부여해 배열하는 작가에게 그가 작업을 설계하는 조형적 도식에 대해 물었다.
 
시청각(이하 시청각) : 하얀색의 공간, 홀수와 같은 숫자를 작업 과정에서 자주 선택한다. «홀»도 그렇다.
 
김동희(이하 김) : «3 Volumes»(시청각, 2017, 안인용 기획[1])에서는 공간의 부피만 보여주고 싶어 하얀색으로 했다. 다른 색은 색상 자체의 레이어가 쌓일 거라 생각해서 굳이 사용하지 않았다. 전시장 디자인을 하는 입장에서, 전시장의 기본 색상이 백색인 것 또한 하얀색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가 된다. 홀수의 경우 회사를 꾸리고 팀원들과 설계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팀원들이 짝수로 디자인해둔 것을 늘 홀수로 바꾸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냥 구도상 제일 안정적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커다란 판 위에 조명 두 개를 놓으면 좀 불안하고, 세 개를 놓으면 안정적인 인상을 받는다. 두 개만 있으면 누가 하나를 가져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b]
 
시청각 : 각각의 구조물들이 어떤 이유에서 이번 전시장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김 : 이번 전시에는 지난 행사와 전시 때 만들었던 것을 갖고 들어왔다. 그리드 제작 시 목재 패널의 규격 사이즈인 4×8 완장에 최대한 맞추면서도, 앞선 행사에 필요한 규모를 따랐다. 만들어진 기둥들은 이 전시를 염두에 두고 다시 가로세로 축을 바꾸면서 엮었다. 처음 전시를 기획한 현시원 큐레이터가 2020년 1월 초 장영규 작가에게 특정 창문에서 바라보이는 풍경에 반응하는 사운드를 제안했다. 장영규 작가는 «홀»을 위해 이 공간의 창문 세 개를 보고 창문마다 다르게 보이는 바깥 풍경으로부터 시작한, 혹은 그와 연계된 사운드 작업을 제작했다. 그 아이디어를 듣고 창문 세 개와 그리드 세 칸의 위치를 비틀어 각기 다른 풍경을 선택해서 볼 수 있는 ‹Sequence Type: 1›을 만들었다. 벽면에는 다른 전시에서 작가들의 작업을 걸기 위해 만들고 벽에 부착했던 좌대를 보관하다가 갖다 붙였다. 두 가지 작업의 제작 방식은 조금 다르다. 전자가 주로 해왔던,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동선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작업이라면, 후자는 전시 디자인이자, 지지체, 좌대를 만들었던 작업의 부산물을 장식용 사슴 뿔을 걸 법한 높이에 부착한 것이다. 실제로 이 공간 안에서 작동하는 구조인 그리드와 작동하지 않는 벽면 구조물을 통해 두 가지 층위의 작업을 다 보여주고 싶었다. «3 Volumes»의 기념품으로 갖고 있다가 그간 필요한 곳에 종종 활용하던 스테인리스 난간도 슬쩍 더해 두었다. 시청각 랩 전시의 연구적인 특성을 고려해 전시에 참여하는 여러 방법을 가져오려 했다.
 

[c]
 
시청각 : 음악이라는 비물질적인 대상을 위한 공간을 조성하는 작업은 어떠했나. 제작 또는 설치 시 염두에 둔 부분이 있나.
 
김 : 기둥을 사이에 두고 양측에 앉았을 때, 창문으로 풍경을 볼 수 있는 포인트를 두 군데씩 줬다. 그리고 유선 헤드폰의 선 길이를 생각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위치를 임의로 설정했다. 그런데 회의하다 보니 그리드 안쪽 공간에서 밖을 보는 것도 같은 효과더라. 어쨌든 그리드 칸과 창이 만나서 생기는 각도를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안쪽에서도 각자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고, 홈페이지에서 창문의 위치를 골라 해당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하기로 했다. 그때에는 공간디자이너의 마음으로 회의에 참여했던 것 같다. 창에 대한 음악 작업이 있고, 이 공간 안에서 이 음악이 어떤 식으로 전달되면 처음 계획했던 방향을 해치지 않을까를 고민하며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리고 음악이 더해질 것을 고려해서 공간을 비워두려 했다. 음악이 없었으면 텅 비게 보였을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해 음악이 공간을 채울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물질적인 대상이든 비물질적인 대상이든 기능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무엇이 필요하다, 적합하다 이런 게 늘 있지 않나. 최초의 기획이나 작가가 원하는 방향이 있으니까.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적절한 선을 찾아서 구현하려 한다.
 

[d]
 
시청각 : 관객의 동선 또는 움직임을 어디까지 상상하는지 궁금하다.
 
김 : 무엇이 보이고 볼 수 있는가를 가능한 한 거의 다 끝까지 시뮬레이션하는 편이다. 규모가 있는 작업의 경우 컴퓨터 작업 전 실측을 하면서 어디를 보면 좋겠다고 상정한 다음, 작업한 설계 도면을 목공팀과 도장팀에 넘긴다. 이후 목공팀이 작업하고 있을 때 실제로 작동하는지 여러 차례 확인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동선, 풍경이 있다. 그런 것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편이고. 그래서 꼼꼼히 시뮬레이션한다. ‹Sequence Type: 1›도 모든 포인트마다 앉아보고 조정했다. 전시장에 들어와서 넘어갈 수 있고, 돌아 들어갈 수도 있는 입구 또는 통로의 사이즈에 꽤 신경을 썼다. 구조물을 돌아 들어갈 수는 있지만 벽과 기둥의 간격을 너무 크지 않게 만들려고 했고, 기둥 밖에서 구조물이 건물의 외부처럼도 보이게 시뮬레이션하며 간격을 조정했다.
 
시청각 : 주어진 공간과 건물은 작가의 조건이자 변화의 수단이 되어왔다. 평소 한국의 공간, 건물, 거리를 보며 전시와 관련해 어떤 생각을 하나?
 
김 : 요즘에는 비대면 전시의 상황에 관해 고민한다. 전시를 변화시키는 조건이 무엇이 있을까. 전시 공간에 기후라는 변수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전시를 실제로 본다는 경험은 온라인에서 어디서 무엇을 스크롤하는 경험으로 바뀌는지 궁금하다. 노상호 작가랑도 ‘이게 가능해? 이 이미지를 여기서 이렇게 보게 될 수 있어?’ 라고 말하곤 한다. 평소 전시를 어떻게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다. 이전 작업들도 공간의 여러 구조, 부분들을 사용해 문이나 좌대 등이 가진 기존 기능을 바꿔보고는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창문이 장영규 작가의 작업이 작동하는 물리적 좌대이자 (나의) 작업 자체로 이용되었다. 평소 공간의 창문들을 이용해서 작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여러 번 했다. 이번 전시에서 창문에 두껍게 깊이를 줘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장영규 작가가 세 개의 창문의 풍경을 선택하고 만든 음악을 어떤 위치에서 들을 수 있을까 질문했을 때, 창과 구조물의 위치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게 하는 점이 중요하다고 봤다. 시선에 따라 창과 관객의 시선, 창 틀 끼리의 시각이 중첩될 수 있는 구조물로 정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공간에 밀도가 생긴 것 같다.
 
시청각 : 전시 공간의 구성과 그래픽 툴 기능의 명칭에서 착안한 작품 제목 간 모종의 관계가 느껴진다. 예로 2018년 «유령팔» 전(북서울시립미술관, 2018, 홍이지 기획)에서 전시된 ‹궤도, 이동/복사›가 그렇다. 작가에게 도면은 얼마나 정확한 계획인가? 도면으로 당신의 작업을 보는 것과 실제 공간에 오는 것 사이의 관계는 어떤가.
 
김 : 설계한 도면을 작품상 거의 구현하는 편이다. 작가로서 설계 작업을 한 다음 스스로 운영 중인 전시 시공 회사에 발주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간극을 줄여야 일하기 편하다. 설계할 때 실제 어떻게 설치될 것인가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쓰는 터라 그대로 작업이 되는 게 좋은 것 같다. 다만 실제 제작 단계에서 앉아보고, 올라보고, 지나가 보면서 치수들은 조금씩 조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도면으로 작업을 반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지난 개인전처럼 전시 후 다 버릴 수밖에 없는 작업들은 도면을 기반으로 재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공간에서의 경험이 사실 더 중요하기는 하다. 그런데 구현된 공간이 없어지더라도 그 공간을 다시 만들면 되니까. 처음에는 사실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택했던 방식이다. 지금은 보관이 소량 가능하게 되어 어떻게 완전히 부수지 않고 작업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 기둥 같은 경우도 바로 부술 생각은 없다. 계속 어떤 방식으로 조합해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e]
 
시청각 : 작업들이 매번 사라진다. 무엇이 어떻게 남아있나.
 
김 : 지난 작업을 잘 보관하고 싶은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느 정도 보관과 이동이 가능한 환경을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들고 나를 수 있는 현실적인 조건에 맞고, 여러 번 써야겠다는 마음에서 제작한 여기 기둥과 같은 작업이 남았다. 그렇지 않을 때는 사실 불가능해서, 지금 제작 중인 작업은 조립식으로 실험해보고 있다. 무언가 좀 남는 것을 만들고 싶어서. 부수고 남은 것 자체를 조각이라 보긴 어려우니까, 새로 작업이 되려면 어떠한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철수하고 난 것을 어떻게 할 거냐, 조립식으로 어떤 걸 만들어 볼 거냐 아니면 설계 도면을 이용해볼 거냐, 여러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하나씩 기회나 기획 안에서 실험해볼 수 있을 때마다 해보고 있다.
 
시청각 : 전시를 관람하는 외부 조건에 대해 늘 생각하게 하는 작업이다. 계절이나 날씨까지도 언급하는 것을 보았는데, 전시를 보는 방식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 : 멋있는 건물 보러 갈 때, 그 주변에 있는 건물을 바라봐도 그렇고 날씨 따라 좀 다르잖나. 어느 적합한 순간이 있다. 공간에서 마음에 드는 순간을 미리 발견해두고 구현되도록 구조물을 제작한다. 그동안 대체로 관람의 대상이 되는 작품을 만들었던 게 아니라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구조물을 통해서 관객이 어떤 식으로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가. 어떤 장면들을 만나는가. 작업마다 전시되는 계절이나 날씨가 실제로 다르고,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연광이 그대로 들어오게 하고 싶었다. 입구를 들어와서 오른쪽으로 돌았을 때는 뭐를 보고, 왼쪽으로 돌았을 때는 뭐를 보고, 직진하고, 어느 갈래를 선택하는지에 있어 임의적인 환경을 만들기보다는 자율적인 환경 안에 시뮬레이션해서 놓는다. 그 순간이 오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적절한 때가 오긴 오더라.
 

[f]
 
인터뷰/정리 : 김예지
 
김예지. 전시의 장소와 제도를 탐구하는 글을 쓰며, 기존 미술 제도에 완전히 자리 매기지 못한 시각예술 매체들의 전시 방법과 제도화의 방식을 고민해왔다. 최근 전시 «초-극적 단상»(서울시립미술관 SeMA창고, 2019)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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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 홈페이지 참조. audiovisualpavilion.org/exhibitions/3-volumes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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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Volumes»(시청각, 2017, 안인용 기획) 설치 전경
© 김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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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HALL)»(시청각랩, 2020) 설치 전경
© eujene 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