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 랩 (AVP lab)
AVP 2013~2019
avpavilion@gmail.com
시청각 랩(AVP lab)은 연구 공간이자 작품, 작가와 대화하는 창구로, 계간 시청각을 만드는 오피스 개념의 전시 공간이다.
AVP lab, where the exhibition is hosted, is an office-styled exhibition space that publishes AVP Monthly, in addition to serving as a research space and avenue to connect with artwork and artists.
서울 용산구 용문동 38-118 1층
(도로명) 효창원로 25길 9
1F, 38-118 Yongmun dong,
Yongsan-gu, Seoul
KAKAO MAP / NAVER MAP
시청각 랩 AVP LAB
전시 문서 Exhibition Document
계간 시청각 AVP Quarter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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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스코어, 컨베이어 벨트
: 전유된 이미지와 아카이브로서의 혼종적 공간

서예원
 

“빛의 스펙트럼을 경유하여 마른 잉크 자국 위에서 시선을 불러일으키는 ‘이상한 이미지’는 말을 건넨다.”
“작가가 구성한 집단 지성의 공간인 영화관과 서점, 10년의 큐레토리얼 역사를 지닌 시청각 공간, 몸의 개입을 환대하는 퍼포먼스의 일시적 공간은 전시 기간동안 복합적인 회색 지대로 기능한다.”
“산만한 주의력과 공존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아카이빙의 방법론에 있을 것이다.”
 
 
A. 시
 
선별된 이미지와 편집을 거친 장(pages)으로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빛바랜 시간을 머금고, 때로는 통제된 시점으로 혹은 격렬한 프레임으로 우리 눈앞에 온다. 빛의 스펙트럼을 경유하여 마른 잉크 자국 위에서 시선을 불러일으키는 ‘이상한 이미지’는 말을 건넨다.[1] 그 말들은 과거에는 시간의 격차를 바짝 쫓아가 당대를 주창하고 현실을 수록하며 재현에 다가가려 혼신을 다했다. 참여를 위해 지성을 발휘하고, 감성적인 관람보다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도록 권유했다. 우리를 속이지 않는 말들로 잉크를 투사한 이미지는 선형적 시간에 초점을 맞추어 나아갔다. 반면, 어떤 경험에 기대어 갈 수 없는 오늘날의 장면들은 ‘다른 시간과 다른 장소’에서 만남을 구한다. 시와 말들은 다른 표피에 싸여 어렴풋이 시차를 지니고 도달한다. 분산된 거대한 이미지들은 주관을 잃고 순환을 거듭한다. 오래된 서점에서부터 온라인 페이지나 거리의 전광판, 쇼핑몰의 상표 등에서 말이다.
 

‹이미지의 선언›, 2023, 단채널 비디오, 컬러, 14:00 ⓒ 권수연
‹Manifesto of image›, 2023, Single-channel video, 14:00 ⓒ Sooyeon Kwon

 
권수연의 영상 ‹이미지의 선언 (Manifesto of Image)›(2023)은 과거 홍콩에서 아방가르드 서점 운영과 함께 발간된 한 격주간지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우리가 경험할 수 없었던 격동의 70년대는 자유를 위해 절실히 열망하고, 저항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호소하던 시기였다. 새로운 세계로 향한 도약에서 피의 얼룩과 몸짓, 공동의 목소리가 운반되었고, 그 공동의 기억들은 현재 기록으로만 남아있다. 오랜 시간 자취를 감췄던 기억의 잔흔은 당시의 급진적인 잡지 페이지와 그리고 오늘날 스캔(scan)을 통하여 스크린으로 경유한다. 빛으로 재투과된 이미지 도큐먼트는 영상의 연속성에서 접합과 충돌의 배열로 의미를 생성하고, 우리에게 다시금 질문한다. 영상에서의 목소리는 발췌한 이미지에 덧대어 서사로 기능한다. 이 서사는 지난 당대의 ‘선언’으로서 직접적으로 사건을 지시하기도 혹은 시[2]로서 출현하기도 한다. 해묵은 에세이 일지라도 독백에 가까운 서정시의 언어가 어떤 직접적인 사회적 메시지 보다도 더 성찰적일 수 있다는 한 평론가의 말[3]처럼, “계산하지도, 평가하지도 않고 주는 그것이 주권적이다”라고 언급한 바타유의 말처럼, 통일되지 못한 텍스트들은 그 자체로 대화가 되고 선언이 된다. 그 목소리들은 잡지, 영상, 렉처 퍼포먼스 각 매체의 페이지에서 불완전하게 뒤섞인다.
 
 
B. 스코어
 
『세븐티스 바이위클리 진(70’s biweekly, boooook, zine)』에 수록된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4개의 시는 본래 페이지 구성에서 일탈하여 전시공간 시청각에서 특별호 간지 ‘렉처 퍼포먼스’로 펼쳐낸다. 이 특별호를 구성하는 것.
 
공간-무대에서 행위자가 장면이나 메세지를 통해 수행적으로 전달하는 사건이 ‘퍼포먼스’라면, ‘스코어’는 이 사건의 전후에서 수행을 서술하는 재료이자 물질적이거나 가시적으로 남겨진 잔존물이다. 스코어는 행위를 초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지시문이나 악보로 보존을 위한 기록물로 기능한다. 아카이브 도큐먼트로서 스코어가 지닌 아카이브성은 발화를 예비하는 가능태로서 정박의 직전에서 완료하기를 지연하는 존재이다. 스코어의 진정한 수행은 온전히 완료되지 못하는 시점에서 발현된다. 스코어의 수행은 행위자에 의해 번역되고, 기록자에 의해 부호화되며, 다시 행위자에 의해 실현된다. 실제 무대에서 완전히 기능했는지 증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스코어는 그 자체로 발생하지 않은 믿음의 기호이며, 새로운 감각과 지식 공유로 향하는 담론적 언어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기능하지 않는 공백일 수도 있다.
 
이 특별호를 구성하는 것에 포함되는 ‘시’와 ‘독자의 편지’ 텍스트는 미래의 퍼포먼스가 된다. 그것은 당대의 사실을 전승하는 증언의 기록을 너머, 임의적이고 불완전한 텍스트로서 힘을 지니는 현재가 된다. 특별호의 스코어는 퍼포머의 ‘몸-신체’를 작동시키기 위한 설계일 수도 있고, 몸-신체를 비가시화하여 전시공간 바깥으로 위치하게 하는 조건일 수도 있다. 이 특별호는 행위자와 수용자의 발화 행위를 통한 ‘능동적인 읽기’를 실험한다. 렉처 퍼포먼스의 형태로 전개하는 능동적인 읽기는 ‘쓰기’로 전환될 수 있으며, 이러한 수용은 저자 중심의 ‘작품에서’ 수용자 중심의 ‘텍스트로’ 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4] 이 발화의 수행은 고정된 의미를 거부하고 능동적인 수용자로 위치 짓게 하며, 렉처 퍼포먼스 안에서의 발화자, 행위자, 관객의 경계를 해체한다. 영사되는 프로젝션 위 스코어를 읽어나가는 낭독과 묵독, 발화자 개인의 속도와 흐름, 진을 넘기는 종이 소리는 상호텍스트적으로 공간을 메운다.
 
아카이브를 논할 때 경계해야 함이 있다면 과거와 연속적 기록 선상에서 시간차를 그대로 이어오는 것이다. 안드레 레페키(André Lepecki)는 아카이브가 과거에서 현재에 도달하는 시간성 안에서 문화와 정치적 맥락을 살피고, 현재에서 이끌어 기록하는 힘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한다.[5] 앞서 말한 능동적 읽기와 쓰기와 유사한 맥락에서 현재로 재위치하기 위한 이 전략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스코어-아카이브가 아닌 현재를 기록하고자 하는 주관성에서 비롯한다. 시간 매체에서 불가피한 관계이거나 재연 작업의 경우 비판적 견해로 읽어내는 것, 과거-미래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분배하는 것, 향수를 불러일으키지 않고 구체화하도록 노력하는 일에서 차이를 구별하고, 현재에 펼쳐놓는 기록에 관한 정치성이 요구된다. 보기의 구조는 과거를 해방하고 미래를 활용함으로써 가능하다.
 
 
C. 컨베이어 벨트
 
프로젝션 영사와 어둠을 위해 한쪽 벽면을 모두 차단한 검은 커튼, 미술관의 영상 관람 의자, 컨베이어 벨트 설치 구조물, 회색 좌대 위 CRT TV, 서점, 전시 중 일시적인 퍼포먼스. 이러한 구조와 관람 형식, 연출적이고도 사실상 자연스러운 이 구성은 시청각 1층 공간에서 동시적으로 발생한다. 화이트 큐브와 블랙박스 공간의 결합은 오늘날 대단한 시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둠과 극장에 관한 통치 역사[6]’ 담론이나 ‘산만하고 혼종적인 그레이 존(grey zone)[7]’과 관련한 전시공간의 논의는 현재 진행 속에서 여전히 주요하다.
 

《70’s Biweekly, Boooook》(시청각 랩, 2023) 전시 전경 ⓒ 권수연
Exhibition installation view of 70’s Biweekly, Boooook (AVP Lab, 2023) ⓒ Sooyeon Kwon

 

«70’s Biweekly, Boooook»(시청각 랩, 2023) 전시 전경 ⓒ 권수연
Exhibition installation view of 70’s Biweekly, Boooook (AVP Lab, 2023) ⓒ Sooyeon Kwon

 

«70’s Biweekly, Boooook»(시청각 랩, 2023) 전시 전경 ⓒ 권수연
Exhibition installation view of 70’s Biweekly, Boooook (AVP Lab, 2023) ⓒ Sooyeon Kwon

 

«70’s Biweekly, Boooook»(시청각 랩, 2023) 전시 전경 ⓒ 권수연
Exhibition installation view of 70’s Biweekly, Boooook (AVP Lab, 2023) ⓒ Sooyeon Kwon

 

«70’s Biweekly, Boooook»(시청각 랩, 2023) 잡지의 일부 페이지 ⓒ 권수연
The Page of Exhibition zine of 70’s Biweekly, Boooook (AVP Lab, 2023) ⓒ Sooyeon Kwon

 
작가가 구성한 집단 지성의 공간인 영화관과 서점, 10년의 큐레토리얼 역사를 지닌 시청각 공간, 몸의 개입을 환대하는 퍼포먼스의 일시적 공간은 전시 기간동안 복합적인 회색 지대로 기능한다. 이는 단순 매체-장르적으로 퍼포먼스 전시나 시네마틱 전시로 의미를 축소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전시공간을 관람하는 관객의 행동적 반응’과 이로 발생하는 ‘오늘날 기술 발전과 통치 역사가 공간과의 개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비 노동의 의미’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공통적으로 영화와 공연예술이 미술관과 혼합되면서 경제적인 측면의 ‘어떤 산만함’을 이끌었다고 본다. 미술관 관람시간 동안 관람객들은 공간과 환경에 ‘몸’이 익숙하게 체득되지 않으며 주도적인 관람을 해야 하는 다소 어려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전시공간의 관람객은 긴 시간 공간을 돌아다니며 체력을 소모하며, 심지어 미술관에서의 퍼포먼스는 공간 여기저기서 시작이나 끝도 없이 진행한다. 이때 통제적이고 정적인 관람 방식을 기존에 취하던 영화와 퍼포먼스 관객들은 더이상 집중적이고 근대적인 일점 원근법 관람 방식이 아닌 다관점주의(multi-perspective)의 지각 방식으로 이행한다.[8]
 
구경꾼[9]들로 인해 실시간으로 업로드되는 SNS 페이지, 공간은 가벼워지지만 집중을 모으는 연극적 장치들, 오늘날 미술관에서 항시 동반되는 다중적이고 일시적인 ‘산만한’ 웹페이지들(기사, 광고, 배너 팝업 등을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이로써 드러나는 퍼포먼스의 영도(degree zero). 미술관은 공장과 영화관으로 상징되는 근대적인 시간성에서부터 다중관점으로 온라인상으로까지 다변하고 확장하는 혼종성을 이룬다. 이때 청중들의 ‘집중’과 ‘산만함’의 행위는 근대 산업화의 긴 역사에 더 근본을 지니고 있음을 의도한다. 공장과 극장은 자본주의식 통치 체제에서 인간의 인식과 주의력을 수동적으로 형성하기 위해 훈육적인 환경을 강요하는 장소였다.[10] 그리고 공장의 테일러화는 소비와 노동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작업 중단을 최소화하고 ‘집중’만을 요하는 행위와 연관한다.
 
어둠으로 시야를 배제하고 수동적인 ‘집중’을 강요했던 19세기 후반의 바그너식 극장은 디지털 공간을 포함하여 전시 공간을 다초점으로 아우르는 혼종적 공간으로 이미 도약했다. 그리고 여전히 미술관은 ‘산만함’으로 대응된다. 하지만 산만함으로 자멸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바그너식 극장 ‘이전’에도 사실 극장은 산만한 사교의 장이었다. 산만한 주의력과 공존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아카이빙의 방법론에 있을 것이다.
 
서예원은 매체와 태도, 충돌과 모순, 기록과 전달 등 다양한 조건의 기저에서 반응하는 큐레이토리얼의 힘에 대해 고민한다. 최근에는 기록과 전달 행위가 정보와 의미 차원을 넘어, 공간과 신체적인 것 안팎의 지식생산의 장 안에서 다른 질서를 지니며 배치되는 관계에 관해 모색한다. 권수연의 전시에서 퍼포먼스 큐레이터로 임하며 이 글을 썼다.
 
 

[1]
권수연 작가의 ‹이미지의 선언›(2023) 영상 자막의 한 문장을 인용하였다.
 
[2]
작가가 발췌한 70년대 홍콩의 『세븐티스 바이위클리 진(70’s biweekly book)』의 아카이브에서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 연출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hold Brecht)의 시를 대량 발견한다. 이 시와 말들은 전시와 연계하는 렉처 퍼포먼스에서 주된 단초가 된다.
 
[3]
서동진, 「보론 2: “서정시와 사회”, 어게인」, 『동시대 이후: 시간-경험-이미지』, 현실문화A, 2018, p. 207.
 
[4]
롤랑 바르트, 김희영 옮김, 『텍스트의 즐거움 (La Plaiser du texte/Leçon)』, 동문선, 2002, pp. 38-39 ; 김상옥, 「동시대 렉처 퍼포먼스의 담론 형성 경향」, 『한국어와 문화』, 제30집, 2021, p. 10에서 재인용.
 
[5]
André Lepecki, ‘The Body as Archive: Will to Re-Enact and the Afterlives of Dances’, Dance Research Journal, Vol. 42, No. 2, 2010, pp. 28-48.
 
[6]
Noam M. Elcott, ‘Bodies in the Dark: Cinemas, Spectatorship, Disciplines, Residue’, In Dreamlands: Immersive Cinema and Art, 1905-2016, edited by Chrissie Iles. New York: Whitney Museum, 2016.
 
[7]
Claire Bishop, ‘Dance, Performance, and Social Media in the Post-Digital Museum’, MUSEUMS AT THE POST-DIGITAL TURN, 2017, pp. 88-104 ; 클레어 비숍, 「포스트디지털 미술관에서 춤과 퍼포먼스, 소셜 미디어」, 『미술관은 무엇을 움직이는가: 미술과 민주주의』, 국립현대미술관, 2020, pp. 85-103에서 재인용.
 
[8]
Claire Bishop, 같은 글, pp. 86-99.
 
[9]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은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 업로드를 위한 목적 정도로 정보만을 궁금해하며 치고 빠지는 관람자를 ‘구경꾼(spectator)’으로, 작품에 더 몰입하고 정치적으로 윤리적인 관람자를 ‘목격자(witness)’로 상정하며 테크놀로지 기술 발전의 기저에 영향을 미치는 이들을 근본적으로 구분하고자 하였다.
 
[10]
Noam M. Elcott, 같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