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 랩 (AVP lab)
AVP 2013~2019
avpavilion@gmail.com
시청각 랩(AVP lab)은 연구 공간이자 작품, 작가와 대화하는 창구로, 계간 시청각을 만드는 오피스 개념의 전시 공간이다.
AVP lab, where the exhibition is hosted, is an office-styled exhibition space that publishes AVP Monthly, in addition to serving as a research space and avenue to connect with artwork and artists.
서울 용산구 용문동 38-118 1층
(도로명) 효창원로 25길 9
1F, 38-118 Yongmun dong,
Yongsan-gu, Seoul
KAKAO MAP / NAVER MAP
시청각 랩 AVP LAB
전시 문서 Exhibition Document
계간 시청각 AVP Quarter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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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이명미
‹미니어처›

시청각 랩
서울 용산구 용문동 38-118 1층
 
2023. 8. 25 – 2023. 9. 19
화–일 12시–18시
매주 월요일 휴관
 
글, 기획 신지현
그래픽 디자인 불도저 프레스
설치 도움 샴푸
사진 전명은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Minsu Kim
Lee Myung Mi
Miniature

 
AVP lab
1F, 38-118 Yongmun dong, Yongsan-gu, Seoul
 
August 25th, 2023 – September 19th, 2023
Tue–Sun 12–18pm
Closed on Mondays
 
Text, Curated by Jihyun Shin
Graphic Design by BULLDOZER
Installation by SHAMPOO
Photo by Eun Chun
Supported by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미니어처»는 세대가 다른 두 작가, 90년대생 김민수와 50년대생 이명미의 작업 사이 연결점을 잇는다. 40년의 시차 속 각기 다른 시대와 배경에서 작업을 시작하고 개진시켜 온 두 작가를 경유하며 전시로 이어지는 화두는 바로 ‘일상성’이다. 회화를 통해 일상을 담아내는 것은 다소 개인적으로 비치기에 중요하지 않은 것, 언제나 긴급한 현시대를 진단하는 급진성과는 거리가 먼 소재로 여겨져 왔다. 그것은 쉬이 사사롭거나 주관적인 것, 나아가서는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오기도 했으나 본 전시는 미시사 속 개인의 이야기, 그 이면을 공공의 영역으로 끄집어 올리길 시도한다. 여기, 김민수와 이명미는 일상 속 풍경, 순간, 대상을 붙잡아 작업으로 풀어낸다. 두 작가에게 삶이란 때로 작업보다 선행하는 것과 같이 보인다. 삶과 예술 사이 균형을 저울질하며 이들은 이론 아닌 경험을 통해 얻은 통찰과 감각을 회화로 드러낸다. 인간 그리고 여성의 삶을 통하는 경험의 순간은 일상이라는 단어로 수렴하며 보편성과 연계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개별적 방법론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이는 고유하기도 하다. 이들이 작업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바, 갈망하기에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본 전시는 이들의 작업을 미술의 규범적 역사 안에 좌표 찍거나 정의 내리지 않는 태도를 견지한다. 다만,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서로를 비추며 역사의 선형과 나란히 나아갈 뿐이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두 작가 사이에 교차점이 생각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연속이었다. 별과 꽃, 컵과 과일, 개와 사람, 자연과 풍경을 그려온 둘의 교차하는 시간성 사이로 무수한 서사와 감각이 암류처럼 흐른다. 이들이 드러내고 또 숨기는 몸짓, 시선, 유머 안에서 두 작가의 작업을 새롭게 읽을, 공통 언어의 도출 가능성을 상상해 본다.
 
재료와 방식은 (일상과 마찬가지로) 회화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언제나 부차적인 것, 도구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본 전시는 일상이라는 키워드 아래 김민수와 이명미가 구사해 온 작업의 재료와 방식을 주요하게 살핀다. 그들의 방식은 유희적, 도전적, 실험적이다. 회화라는 매체의 범위 안에 머무르지만 스티커, 종이, 카펫, 물감 찌꺼기, 나사 등을 지지체에 콜라주 해 다양한 오브제를 자유롭게 화면 안에 끌어들인다. 또한 바느질, 패치워크 등의 방식을 통해 화면을 확장해 나아간다. 이들의 놀이적이면서도 자유로운 태도는 대담하지만 설명적이지 않다.
 
“나에게 작업이란 놀이하는 공간이자 도구이며, 정신세계”라고 말하는 이명미는 한국 현대미술의 구심점 역할을 한 대구현대미술제(1974~1979)에 창립 멤버로 참여한 이래 오늘날까지 자신의 작업을 개진시켜 오고 있다. 본 전시는 단색조 회화와 개념적 태도가 우세하던 시기, 시류와 관계없이 자신만의 색채(원색 중심의 멀티컬러 사용, 놀이적인 작업 태도, 일상 풍경과 사물을 그림의 소재로 채택)를 꾸준히 선보여 온 이명미의 작업에 주목한다. 이는 동시대 미술사 안에서 여성의 이야기, 개인적 서사, 미시적 소재가 외면받아 온 역사적 관점을 조정하고, 그것의 가치를 드러내 보이기 위한 움직임이 되겠다. 집단적 시류로부터 벗어나 보다 가깝고 명료하게 (이데올로기가 아닌) 삶을 바라보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서 전시는 프로파간다적 메시지를 던지기보단 ‘나’의 이야기와 일상 속 실천을 통한 인류 보편성, 나아가 그 속의 복잡성과 모순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명미의 작업은 놀이의 장으로서의 예술로 귀결한다. 그는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970년대부터 전시 제목은 물론 작품 제목 대부분을 “놀이-Play”로 지어왔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유효하게 작동한다. 간단명료한 작명법에서 유추 가능하듯 이명미에게 ‘놀이’란 그리는 행위, 창작의 행위와 동의어이다. 그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형상, 언어, 색채 안에서 행해질 수 있는 생성과 조합의 무한성을 즐긴다. 스티커, 피규어, 스티치 등을 화면에 끌어들이고 인형, 마네킹, 스펀지 등을 지지체 삼아 그림을 그리는 실험을 감행하며 작업에 유머를 심는 동시에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선과 색’이라는 무기를 양손에 쥔 이명미의 화면은 1970년대 점, 선, 하트, 별, 도형, 숫자 등을 반복해 색면을 채우는 모습을 보이다가 1980년대로 넘어가며 개, 우산, 컵, 전화기 등으로 대상을 확장해 나아간다. 보다 더 날것의 선으로 자유롭고 에너제틱해진 화면은 1990년대 무렵 언어가 화면에 본격 등장하는 모습을 보이며 언어와 이미지, 존재와 인식 사이의 게임을 시작한다. 2000년대 이후 단어로 시작한 그의 그림 속 언어는 대중가요 노랫말, 싯구, 성경 구절로까지 확장된다. 그 사이 작가가 생애 경로를 통해 경험한 무수한 기쁨과 슬픔, 여러 고비-본인의 와병과 가족의 죽음 등-는 개인의 심상뿐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와 통찰, 갈망으로 이어져 오늘날의 그(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간 이명미의 그림에서 발견한 일련의 특징을 시기별로 빠르게 훑는 이유는 앞서 언술한 모든 요소들이 ‘지금’의 이명미의 작업에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시간이라는 것은 비가역적으로 흘러가는 것이지만 그의 작업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확장’과 ‘반복’을 지속한다는 점에서 일상성의 특질과 다시 한번 조우한다. 대체로 근작으로 구성된 «미니어처» 출품작은 그간 이명미가 선보여 온 작품 세계의 연장선이자 일부이다. 과감한 지지체의 변용을 실천해 온 과거와 달리 이번 전시에서 그는 캔버스에 아크릴이라는 보다 전통적인 회화의 재료를 중심으로 작업을 선보이지만, 캔버스를 자유롭게 복제하고(‹놀이-눈›‹놀이-보다›‹Play-Where is he?›(2023)), 조합하며(‹Landscape›(2023)) 지난 50년간 구축해 온 시간과 공간을 종횡무진한다. 그러니까 그의 작업은 삶이라는 거대한 대상을 축소해 넣은, 과거와 미래를 품고 있는 일종의 미니어처라 하겠다.
 
한편 김민수는 현실의 디테일을 관찰하고, 사소한 일상의 순간을 기록한다. 사람과 풍경, 이미지와 말들은 시간을 따라 흘러가기도, 담기기도 하며 개인의 일상을 만들고 양적 역사를 만들며 시대를 견인한다. 이야기(역사)가 만들어지고 건져 올려진 것이라면 그 사이로 무수히 지나가고 잊혀진 순간 또한 동시대의 한 면이자 만들어진 역사를 지탱하는 시간일 것이다. 전시가 김민수에게 주목하는 것은 일상이라는 보편적 소재에서 출발한 작업이 획득하는 고유성, 이에 수반되는 재료로서의 감각에 대한 것이다. 리듬감과 조형성을 작업의 중요한 요소로 꼽는 그의 작업 안에서 ‘감각’은 또 하나의 중요한 질료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10년 전 작업 ‹걷는 사람›(2013)에서 출발해 보자. 당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을 그리고 싶었던 작가는 이 발 그림과 함께 얼굴 그림(‹걷는 남자›(2013))을 그렸다. 회화로 움직임을 담아내는 방식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캔버스 사이 마치 페이지 넘기듯 ‘연결되어있는 감각’을 담아내보려는 순수한 시도였을 것이다. 함께 그려졌던 ‹걷는 남자›는 현재 망실되었지만 굳이 두 작업을 함께 언급하는, 그리고 그중 한 작업을 전시에서 선보이기로 결심한 이유는 작품이 갖는 ‘시작점’으로서의 의미에 있다. 이 두 작업의 관계가 현재 시점에서의 김민수의 작업을 이해하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등산›(2023)을 중심으로 구성된 단편의 작업들에도 이러한 작가적 태도가 반영된다. 어느 날 산을 오르다 본 풍경을 떠올리며 그린 ‹등산›은 관람자로 하여금 (산에서의 그가 그랬듯) 움직임의 감각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한다. 주변을 따라 흐르던 냇물과 새, 나무 위 애벌레로 이어지던 작가의 시선은 단편의 이미지가 되어 전시장에 함께 놓인다. 각각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하나의 덩어리로도 봄직한 일련의 작업들은 연결된 서사로서의 가능성을 품는다. 이때의 가능성이란 상상하고 추론한다는 점에서 감각과 같은 성질의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듯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서 붙들린 ‘순간’은 작가를 통해 회화적 시도로 연결된다. 여기에서 ‘회화’ 아닌 ‘회화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실험적인 재료의 사용과 방식을 이유로 들 수 있겠다. 그는 아크릴과 캔버스를 주재료로 활용하고 있음에도 기성품과 원자재, 미술 용품과 인테리어 용품을 오가며 작업의 재료적 범위를 과감히 넓힌다. 나무 패널에 캔버스를 덧대고(‹별 그림자›(2023) ‹노랑새›(2022)) 물감 대신 실내용 페인트를 바르고 카펫을 콜라주한다.(‹까치›‹애벌레›(2022)) 스티커를 붙이고(‹위에서 부터 쌓기›(2019)), 종이 바느질로 지지체를 연장해 나아가는 모습도 보인다.(‹꽃다발›(2023)) 이는 그의 작업을 규범적 회화로 보기에 곤란하도록 (절대성, 평면성, 완전성으로부터 위배되도록) 만든다. 김민수의 작업은 회화적 관습으로부터의 이탈이며 군집된 감각은 위계와 선형 없이 작업 안에 자유로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편 가위질, 바느질, 스티커 붙이기 등은 흔히 가정적, 여성적 행위로 읽혀오던 것들이다. 그러나 이세계에선 무엇보다 보편적이고 중심이 되는 작업적 요소가 되겠다. 이는 그가 종이 콜라주를 하면서도 색종이의 앞면이 아닌 뒷면을, 오려낸 모양 아닌 잘려나간 가장자리를 붙이는 이유(‹무제›(2014))에 다름 아니다.
 
전시의 제목으로 차용해 온 “미니어처”는 단어의 의미 그대로 이해되어도 손색이 없지만, 비평가이자 시인인 수잔 스튜어트의 책 『갈망에 대하여』(1993)에서의 ‘미니어처’의 개념을 덧붙였음을 밝힌다. 미니어처는 ‘거대한 것’의 반대 개념으로서 내면성, 가정적인 것, 통제와 균형이라는 정신적 세계, 문화적 산물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이는 일상이라는 내부, 개인의 공간과 시간, “작음 안에 많음”에 대한 은유라 하겠다. 본 전시를 관통하는 기제는 김민수와 이명미가 작업을 통해 풀어내고 응축하는 개인의 공간과 시간이 되겠다.